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와할랄 네루 (문단 편집) == 네루의 후예들 == 브라만 출신의 거두 정치인이라 사후에도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인도 최고의 명문 [[정치인 가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루는 1917년 카말라 네루[* Kamala Nehru. 결혼 전 성은 카울Kaul로서 [[델리 수도 연방구역|델리]]의 브라만이다.]와 결혼했다. 하지만 자와할랄 네루 자신은 카말라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집안의 관계에 따라 맺어진 정략결혼이기도 했고, [[영국]]에서 유학해 모국어인 힌디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잘 했던 본인과 달리 카말라는 [[영어]]도 잘 몰랐던 전통적인 힌두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서 낳은 외동딸인 [[인디라 간디]][*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와는 무관하다. 인디라의 남편은 페로젠 간디로, 마하트마 간디와는 단지 성씨만 같은 사람이다. 태어날 때에는 인디라 네루였던 셈이었다.]는 극진히 사랑했다.[* 그러나 딸을 사랑한 것과 별개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버는 직업활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영국 유학을 가서는 1년에 용돈을 800파운드나 쓸 정도로 방탕하게 놀았으면서, 정작 돈을 벌어야 할 때가 되어서는 본업인 변호사는 팽개치고 정치와 식민지 독립운동에 빠져 버린 탓이었다. 오죽하면 "네 어머니, 누이들, 아내, 딸은 도대체 언제 먹여살릴 테냐!"하고 화를 내는 네루의 아버지가 쓴 편지가 남아 있을 정도. 네루의 아버지(1861~1931)도 역시 변호사였는데, 이쬭은 평생 근면하게 변호사 일을 하였고 아들과 다르게 금전감각도 갖추어 가장의 임무를 다한 인물이다.] 1936년 카말라 네루와 사별하고 나서 딸 [[인디라 간디]]는 죽은 어머니를 대신해 거의 [[퍼스트 레이디]] 노릇을 하다시피 했다. 인디라 간디 역시 아버지를 따라 인도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실제로 네루가 영국군에 의해 검거되어 수감 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에도 아버지의 지지자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지휘했을 정도였다.] 1964년 아버지 사후에 인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인디라 간디는 1980년 [[시크교]]도들의 독립운동을 강경 진압한 데 대해 앙심을 품은 시크교도 경호원에게 총격을 받아 1984년 암살당했다. 인디라 간디의 아들이자 외손자인 [[라지브 간디]] 역시 인도의 총리를 지냈으나 그도 1980년대 말 [[스리랑카 내전]]에 개입했다가 1991년에 선거 유세 도중 스리랑카 [[타밀족]] 반군 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에서 보낸 테러범의 자폭 테러[* 라지브 간디를 자폭 테러로 암살했던 이 테러범은 1980년대 후반 인도군의 스리랑카 내전 개입 당시 스리랑카 주둔 인도군에 의해 성폭행당한 스리랑카 타밀인 여성이었다.]로 어머니처럼 암살당하고 말았다. 라지브 간디의 부인(즉, 인디라 간디의 며느리이자 네루의 손자며느리)인 [[이탈리아]] 출신의 [[소냐 간디]][* 본명은 안토니아 마이노(Antonia Maino)로, 라지브 간디와 결혼하게 되면서 이름을 이탈리아식 이름인 안토니아에서 비슷한 발음의 인도 이름인 Sonia로 개명했다.] 여사가 1998년 국민회의당 당수로 선출되어 인도 정계에 진출했다. 이후 소니아 간디는 2000년대 중반 국민회의당의 재집권, 만모한 싱의 수상 선출 등을 주도하는 등 인도 정계의 실력자로 자리잡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집권당 당수인 소니아 간디 자신이 수상이 될 수 있었지만, 외국 태생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막후 실세가 되는 편을 선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래의 소니아는 모국 이탈리아의 정치에도 큰 관심은 없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결혼 해서도 내조에 충실한 삶을 꿈꾸었다고 한다. 애초에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다 트리니티 칼리지 재학 중이던 라지브 간디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 이른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네루-간디 가에 시집 온 이상, 정계 입문의 압박을 계속해서 받아 왔으며,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편 라지브 간디가 암살 당하면서 선택의 여지 없이 정계 입문을 하게 된 케이스. 게다가 일단은 '''외국인''' 출신이기도 하고, 직접 수상이 되는 것 보다 당의 실세로 남는 것이 그녀에게도 최선의 선택이었을 확률이 높다. 애초에 그녀는 당 수장이 되기 이전에 그 어떤 공직도 맡은 바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니아 간디가 집권당의 총재까지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거의 "세습제"처럼 되어 버린 인도의 비정상적인 정치 지형 덕분이다.] 그녀의 아들인 [[라훌 간디]], 딸 [[프리양카 간디]]도 가문의 후광을 바탕으로 정계에 안착하면서 인도의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 중. 말하자면 네루 가문의 영향력은 무려 4대에 걸쳐 인도 정계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여담으로 네루 가문의 이 영향력은 심지어 반대당인 [[인도 인민당]]에도 미치고 있는데, 라지브 간디의 동생인 산제이 간디의 아내 마네카 간디와 산제이와 마네카의 아들인 바룬 간디가 인도 인민당 소속의 하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마네카 간디는 원래 인도 국민회의 소속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나, 산제이가 죽으면서 시어머니인 인디라 간디와 고부갈등을 빚게 되었고 결국 인도 국민회의에서 쫓겨나게 되자 인도 인민당으로 건너가게 되었다고 한다. ||[[파일:external/theviewspaper.net/nehru-gandhi-family1.jpg|width=100%]]|| || 네루 가문의 위엄. 왼쪽부터 네루, 인디라 간디, 라지브 간디, 소니아 간디, 프리앙카, 라훌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